민들레 유산_장승규
지난 밤바람에 상경했을까
검정 보퉁이 하나를 끌어안은
민들레 흰 저고리
아파트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제 막
보퉁이 먼저 낯선 풍경 위에 내려놓더니
아직도 두리번거린다
형제들이 나누어 가졌을 보퉁이 안을 슬쩍 엿보았다
보잘것없이 작은 그 안에
얼마간 먹고 지낼 양식은 잊지 않고 넣었고
앞으로 크게 될 떡잎도 아주 작게 접어 두었고
노란 예쁜 꽃도 몇 송이나 들어 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부디
높은 곳 찾으려고 하지 말거라
낮더라도
네 마음 편한 자리에서 뿌리내리고 살거라
마지막 말씀도 고이 접어 넣었다
민들레 흰 저고리는
돌아앉아 조용히 흔들리고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노란 꽃들은 둘러앉아 티 없이 수다 중이다
[시인] 장 승 규
경남 사천출생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졸업
2002년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당신이 그리운 날은』 『민들레 유산』 등
[詩 감상] 양 현 근
민들레는 세상 낮은 곳에 자리잡고 사는 다년생초의 일종이다. 우리나라 들판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으며, 노란 꽃봉우리를 피운다. 꽃이 지고나면 솜털모양의 깃이 나오는데, 바람을 타고 날아가서 널리 퍼지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자체 생명력과 번식력이 뛰어나 서민들의 힘든 삶에 비유하기도 한다.
남아공에 거주하는 시인은 어린 시절의 애틋한 추억과 형제들의 우애, 그리고 어머니의 따뜻한 가르침을 민들레의 생명력에 빗대어 노래한다. 어디든 높은 자리 찾지 말고 낮은 자리, 마음 편하게 살라는 교훈이 민들레 홀씨처럼 너른 세상으로 멀리 퍼져나가고 있다.
[낭송가] 조 성 식
시마을낭송작가협회 회원
빛고을전국시낭송경연대회 대상
전국애송시낭송대회 대상 등
《시와문화》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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