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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시론]여도지죄(餘桃之罪)와 여도담군(餘桃啗君)

(조세금융신문=양현근 한국증권금융 부사장) 뜨겁던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던 황도 복숭아의 달콤한 맛과 향을 우리는 기억한다. 위(衛)나라의 미자하(彌子瑕)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위나라 왕 영공에게 바쳤던 그 맛이 그러했을까.

 

예부터 복숭아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며, 고사성어에 자주 등장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에 미자하가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왕의 총애를 받던 그는 어느 날 어머니 병문안을 위해 허락도 없이 왕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죄를 물어야 한다는 신하들의 말에 왕은 “효성이 지극하구나, 어머니를 생각한 나머지 벌을 당한다는 것도 잊었구나.”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

 

그 후 어느 날 미자하가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었는데,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먹다 남은 것을 왕에게 드렸다. 왕은 맛있는 것을 다 먹지 않고 자기에게 줬다고 흐뭇해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나이가 들자 미자하의 외모도 점점 빛을 잃게 되고 이에 따라 왕의 총애도 점점 옅어졌다. 어느 날 미자하가 사소한 죄를 짓게 되자 왕은 “저놈이 예전에 내 허락도 없이 수레를 타고, 제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다”며 벌을 내렸다.

 

법(法)은 드러내야 하고, 술(術)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던 한비자(韓非子)가 쓴 유세(遊說) 지침서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얘기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여도지죄(餘桃之罪)와 여도담군(餘桃啗君)이다.

 

쉽게 말하면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이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으나, 죄가 된 것은 갑의 위치에 있는 왕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같은 행동이라도 상황이 바뀌면 판단기준과 행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와 같은 여도지죄가 상황이 바뀜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을 보자. 한두 달 전만 해도 국내 주식시장에 대하여 낙관적인 시각을 쏟아내던 외국인들이 10월들어 반대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미중 간의 무역 갈등과 미국의 금리인상 등의 이슈가 불거지자 10월에만 4조원 넘게 보유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셀코리아’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00선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불안심리가 증시를 억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시장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만의 확고한 판단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장 변화에 따라 일희일비 할수록 주관이 흔들리고 자신감을 잃게 마련이다. 한 때는 팔려는 사람이 없어서 부르는 게 곧 값이었던 강남 아파트시세가 최근 들어 하락추세라는 보도다. 아마 상당기간은 이와 같은 조정이 지속될 거라는 전망이 앞다퉈 나온다.

 

한 달여 전만 해도 온통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는데 그 사이 시장 참여자들의 마음이 바뀐 탓이다. 경제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맑게 갠 하늘도 먹구름이 끼면 소나기가 오는 법이고, 아무리 좋은 관계에 있는 친구도 가끔 불편해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도 뜨거운 감정이 식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곧 미움으로 변하기도 하지 않은가. 세상사가 다 그런 것이다.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좌우하는 글로벌 경제시장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판단기준이 변하고, 어제의 적과 친구가 뒤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하에서는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언제든지 애정이 증오의 관계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사드 파문이나 미중 간의 무역갈등 등이 단적인 예이다. 상대방을 잘 모르는 것도 어찌 보면 여도지죄에 해당한다는 교훈을 새겨야 한다.

 

아울러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다른 경제주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순간의 감정에 좌우되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줬다고 죄를 묻거나 벌을 받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프로필] 양 현 근
• 한국증권금융 부사장, 시인

•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은행감독국장·기획조정국장

• 전) 금융감독원 외환업무실장

• 조선대 경영학과, 연세대 석사, 세종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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