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을 위한 연가_문정희
한겨울
못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 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시인] 문 정 희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오라, 거짓 사랑아』
『한계령을 위한 연가』 『응』
시 에세이 『살아 있다는 것은』 등
제8회 목월문학상, 제47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시감상] 양 현 근
폭설에 갇혀 한 사나흘 쯤 오도가도 못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어느 산골 초가집에서 꼼짝없이 갇혔으면 좋겠다.
아침이면 시퍼렇게 눈뜨는 세상의 모든 소식과
온갖 전화와 문자로부터 단절된 곳에서 오래도록
날이 어두워졌으면 좋겠다.
오, 얼마나 눈부신 고립이냐
얼마나 화려한 휴가일 것이냐
[낭송가] 곽 귀 자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한국문학의집 시낭송대회 대상
김수영시낭송대회 대상
천상병시낭송대회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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