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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급금_이익잉여금

[5분특강 시즌2]가지급금/이익잉여금 해결방법⑬이익잉여금과 전기오류수정손실

 

본 강의는 2018년 10월 기준 세법을 적용하여 촬영하였습니다.

매년  또는 수시로 세법이 변경되어 적용 기준이 다를 수 있으므로
자세한 상담은 강사 또는 세무사 등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수익성이 좋은 기업이 연차를 쌓아 나가면 공통으로 걱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익잉여금의 누적입니다. 잉여금의 적립으로 폐업이나 청산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잉여금이 당기순이익을 높게 잡아야 하는 상황 부채비율을 낮춰야 하는 회사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경우가 많아 더 문제가 됩니다. 당장 잉여금을 처분하려면 40%의 높은 소득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이러한 납부재원이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오류수정손실이라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직전년도의 재고를 과다하게 잡아놔서 원가처리가 안 되었다거나 실제 지출한 인건비인데도 불구하고 불법체류 근로자라 비용을 처리하지 못한 경우 또는 리베이트로 지출된 금액인데 별도 신고를 못 해서 잉여금이 과다하게 지출된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과거 미인식한 임직원에 대한 퇴직금을 전기오류수정손실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 금액의 크기가 경미한 경우에는 당기 비용처리가 가능하고, 중대한 경우에는 잉여금

의 감소로 회계처리 할 수 있습니다.

 

사례를 하나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불법체류자 인건비를 지급하고도 노동자가 추방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혀 신고하지 못해서 가지급금으로 10억원 정도가 축적된 회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관련 증빙을 수집해서 전기오류수정손실로 처리하여 회사의 이익잉여금을 10억원 정도 감소시켰던 경험이 있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조남철 세무사 프로필]

  • (現) 서울특별시 마을세무사 운영위원
  • (現) 경기도 창업진흥원 전문멘토
  • (現) 중소기업중앙회 경영지원단 자문위원
  • (現) 두드림세무회계컨설팅 대표
  • (現) 택스플러스 조세연구회  회장
  • (前) 세무법인 더원
  • (前) 자산관리회사 ㈜FOSAM 세무팀장
  • (前) 서울지방세무사회 연수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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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