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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상훈 강서세무서장 “개과불린(改過不吝), 끊임없이 도전해야”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사진 김종태 기자) 36년을 세무공무원으로 살았다. 국세청 내에서 법인통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도 크다. 진정한 자긍심은 ‘타인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나보다 다르거나 나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꾸준히 배우고 고치면서 살려고 노력했다며 웃는다. 지난 6월 19일 김상훈 강서세무서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강서 지역은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입니다.”

 

김상훈 강서세무서장의 설명처럼 2006년에만 하더라도 강서세무서가 자리 잡은 마곡동은 누런 논밭이 펼쳐져 있는 목가적 분위기의 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2만명의 납세자, 60만의 지역인구가 사는 강서 지역의 대표적 얼굴이 됐다.

 

대규모 주거지와 학교 등이 들어섰고, LG전자, LG CNS 등 LG그룹 계열사들을 시작으로 롯데, 코오롱, 넥센타이어 등 대기업들이 속속 입주를 마쳤다.

 

2006년 5000억원이었던 세수는 10년 후인 2016년 1조 600억원으로 두 배나 증가했고, 2018년 1조 5000억원, 2019년 1조 7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납세자 수도 2017년 9만 8000명에서 2018년 11만 7000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곳의 세정을 담당하는 것은 김상훈 강서세무서장과 200여명 남짓한 강서세무서 직원들. 어깨가 잔뜩 무거워질 법도 하지만, 이날 만난 김 서장과 직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사실 일이 많습니다. 업무 강도로 따지면 서울의 세무서들 중 최고 수준일 겁니다.”

 

김 서장의 전언처럼 강서세무서는 5월 ‘종합소득세, 근로·자녀장려금’ 시즌 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지역의 성장 속도가 탄력을 받으려면 민간투자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도 뒷받침돼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무서의 인력 증원은 매우 어렵다. 얼마전 4명 증원이 결정됐지만 아직은 새 식구를 배치받지 못했다. 납세자가 십만 단위다 보니 세무서 구성원들이 각오해야할 것은 야근만은 아니었다. 업무지체의 우려도 컸다.

 

김 서장은 종합소득세만 29개, 장려금 신청 6개 등 기존보다 민원창구를 늘렸다. 창구를 많이 열었다고 해서 끝은 아니었다. 운영할 수 있는 직원을 계속 투입해야 했고, 일상적인 업무도 동시 소화해야 했다.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했다. 

 

“직원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었을 텐데도 정말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김 서장은 지난 신고철 업무에서 직원들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칭찬했다. 대학생 도우미, 퇴직 세무공무원까지 동원했지만, 역시 가장 힘쓴 것은 직원들이라고 전했다. 당연한 공무의 범위라도 고생한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법인통’, 비결은 경청

 

김 서장은 모든 업무가 전산으로 처리된다고 해도 결국은 '일은 사람이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서장이 세무공무원이 됐던 1983년부터 지금까지 세무행정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다.

 

당시 세무행정은 민간영역에서의 고속성장을 뒷받침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인재부족으로 고민했던 정부는 특수목적대학을 세웠고, 공직자로서 사명감과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했다. 김 서장도 그중 한명이었다.

 

김 서장이 주로 맡은 업무는 법인세 법령해석이었다. 한국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하던 때였고, 국세청 과세논리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경제환경과 납세자의 해명까지 동시에 들어야 했다.

 

남의 생각부터 듣는 김 서장의 습관은 어쩌면 이때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남의 말을 듣고 수용하는 것은 팔랑귀에 지나지 않는다.

 

듣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말에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타당한지, 법에 맞는 것인지 판단하고 실행해야 비로소 ‘경청’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공무원 김상훈’은 ‘법인세맨’이었다. 1996년, 엘리트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국세청 국세조사과에 들어가 4년을 지낸 후, 국세청 법인세과로 옮겨 6년을 지냈다. 국제조세와 법인세 양쪽을 두루 경험한 인재는 당시까지는 김 서장이 유일했다.

 

이를 계기로 국세공무원교육원 법인세법 교수로 4년을 지냈고, 이후에도 서울청 법인납세과, 서울청 조사1국 1과장 등을 역임했다. 그렇게 ‘법인통’으로서의 경력은 단단해졌다.

 

그 덕분인지 세무서장으로 활동하면서도 사람의 목소리에 늘 기울였다. 물론 경청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었다. ‘목구멍 넘어 넘실거리는 말을 참을 때가 수도 없었다’는 게 김 서장의 회상이다.

 

“사실 듣지 않는다면 자신 또는 타인의 오점을 고칠 기회를 원천봉쇄한다. 자신의 기준에서 불합리해보여도 상대에게도 분명 이유가 있으며, 정말 불합리한지 아닌지는 먼저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수 있다. 그래야 성장이 있고, 상호 신뢰와 협력이 있다.”

 

김 서장의 설명은 이어졌다.

 

“설득이 필요한 때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냥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반감을 살 뿐입니다. 설득의 첫 번째 단계는 일단 듣는 것이며, 그 다음이 검증하는 작업이고, 제가 말하는 것은 맨 마지막입니다.”

 

 

수평적 리더십, “상사보다는 선배가 돼야”

 

김 서장의 ‘경청’은 어쩌면 진한 동료애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는 “좋은 상사보다는 좋은 '선배'가 되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일반 기업이라면 노력을 금전적 보상으로 채울 수 있겠지만 공무원은 금전적 보상을 바라기 어렵습니다. 대신 특별한 사명감을 요구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동료뿐입니다. 세무서장은 세무서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업무를 맡았을 뿐, 그 또한 한 명의 공무원이자 한 명의 동료입니다.”

 

그래서인지 김 서장은 직원들과 소통이 많은 세무서장으로 유명하다. 보통은 기관장과 함께하는 것이 불편할 법도 한데, 강서세무서 직원들에게 기대되는 시간이라는 게 내부 구성원의 귀띔이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기 때문이란다.

 

하반기 강서세무서의 일은 여전히 고될 전망이다. 우선 납세자와의 소통이 한층 강화된다. 재래시장, 영세사업자 밀집 지역 등 납세현장의 소상공인들을 두루 만날 예정이다. 신고검증 업무와 늘어나는 세원 등 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소한 에피소드는 강서세무서 직원들이 앞으로도 잘해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지난 4월에는 세무서장배 탁구대회, 6월에는 볼링 대회 후 치맥파티, 하반기에는 당구대회와 족구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당구대회 때는 김 서장도 직접 출전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냉장고에 꽉 찬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화제다. 종합소득세 신고, 장려금 신청으로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서장실에 있던 냉장고에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가득가득 채워 직원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먹거리는 모두 김 서장이 사비로 마련했단다. 김 서장은 손사래를 치지만 직원들 말에 따르면 100만원은 족히 들어갔을 거라고.

 

차가운 머리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선물했지만 후배들을 향한 조언은 뜨겁기 그지없다.

 

“제가 간혹 직원들에게 인생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투자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제 답은 ‘젊음’입니다. 지방국세청이나 본청의 일은 분명히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도전하지 않으면 그 기회를 잃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전했으면 합니다. 공직을 마칠 때 ‘난 의미있는 삶을 살았구나’하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신입 직원들은 당차고 유능하며 열의도 높습니다. 국세청의 미래가 밝을 거라고 믿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공직에 첫발을 딛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부여잡고 있는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고백하건데 의례적인, 그래서 우문(愚問)이었다.

 

김 서장은 거침없이 ‘개과불린(改過不吝)’을 꼽았다. 하나라 폭군 걸왕을 몰아내는 데 기여한 상나라 재상 중훼는 상나라가 천하민심을 얻게 된 이유로 ‘개과불린(改過不吝), 즉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는다’는 것을 꼽았다.

 

‘경청’, ‘수평적 리더십’, ‘개과불린’.

논어의 위령공편에서 등장하는 ‘일이관지(一以貫之)’가 퍼뜩 떠오른다. 씨줄과 날줄이 잘 엮인 옷감처럼, 김 서장의 단정한 삶의 궤적 또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접대비 실명제’를 기억하시나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세무행정사에서 김상훈 강서세무서장이 남긴 발자취가 하나 있다. 그는 2004년 시행됐다가 정치권과 언론의 지속적 공격으로 인해 폐지된 '접대비 실명제'의 주역이었다.

 

접대는 원활한 거래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접대의 수위가 과하면 기업의 경쟁력은 저하되고, 사회 부정부패가 쌓인다.

 

기업의 접대비는 2002년 당시 국내언론의 화두 중 하나였다. 억 소리 나는 접대비가 골프, 룸살롱, 유흥주점에 흥청망청 뿌려졌고, 이를 통해 기업 로비가 판을 쳤다. 때문에 언론에서도 연일 눈먼 돈에 대한 정부대책을 요구했다.

 

접대비 실명제가 나왔던 것은 바로 이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 국세청 법인세과 소속이던 김 서장은 ‘접대비 실명제 기획안’을 국세청장에게 제출했다. 50만원 넘는 접대비는 의무적으로 용도와 사용자를 기재해 보관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이용섭 청장은 “정말 좋은 제도”라며 시행령 개정에 착수했다.

 

하지만 기류가 묘하게 변했다. 기업들의 반대의견은 예상했었지만 '접대비는 눈먼 돈'이라며 투명성을 부르짖던 언론의 입장이 돌변했다. 경제 위축, 기업 자율성 침해 등을 이유로 제도를 비판했다.

 

때가 너무 일렀을까. 국세청은 뚝심 있게 밀고 나갔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접대비 실명제는 짧은 수명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허망한 일은 아니었다. 김영란법이 생기면서 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투명성 제고에 대한 기업 분위기도 상당부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김 서장은 "접대능력보다 기업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오려면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꼭 '접대비 실명제'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을 필요는 없지요. 이를 계기로 혁신되면 충분합니다. 실패는 과정일 뿐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졌다면 성공한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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