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방영석 기자) 보험업계 판매채널의 핵심인 보험설계사, 복잡한 보험상품 및 특약을 소비자의 필요에 맞춰 ‘설계’한다는 의미를 지닌 그들의 직업명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대다수 설계사들은 직업명이 무색하게 실제 보험상품을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와 GA에서 ‘자가설계’하는 설계사들에게 ‘시책’을 지급하고 있는 이유다.
자연스레 실제 보험계약의 설계는 영업 지점에 상주하는 ‘설계 매니저’가 담당하고 있다. 설계사라는 직업을 지닌 이들의 대다수가 실제로는 단순히 계약을 모집하는 ‘영업사원’의 역할 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보험설계사라는 판매채널 자체의 강점을 좀먹는 원흉이 되고 있다. 실제로 본인이 설계하지 않은 계약이 불완전판매가 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할 수 없는데다 추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수 있는 일차원적 문제다.
보험업계도 바보가 아니다. 이 같은 치명적인 문제점에도 불구, 수 십년간 설계사와 설계 매니저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판매채널을 운영한 이유는 결국 ‘확장성’ 때문이었다.
기실 한국 보험 시장은 ‘이성’과 ‘논리’보다는 ‘인맥’과 ‘정’으로 쌓아온 보험계약 위에 서있었다. 현 20~30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보험 아줌마’가 바로 현재의 보험업계를 형성한 주역이었다.
즉 당시 설계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교한 상품 이해도나 특약 조합 등 ‘설계’ 능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보험금 지급 까지 십수년이 소요되는 보험 상품의 특성상 성장기의 보험업계에게 중요한것은 하나라도 많은 계약을 모집하고 한푼이라도 보험료 수익을 늘리는 ‘규모의 경쟁’의 시대였던 셈이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며 이 같은 영업 환경 자체가 확연히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보험시장은 가구당 보험 가입률이 90%를 넘어선지 오래다. 성장과 확장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보유 계약을 건전하게 운용, 이익을 보전하는 ‘유지의 시대’다.
변화를 준비하지 못한 설계사들에게는 재앙이 닥쳤다. 더 이상 새로운 상품을 판매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판매채널은 기존 보험상품을 새로운 상품으로 ‘리모델링’, 다시 말해 갈아태우는 영업에만 목을 메고 있는 것 역시 이같은 어려움이 단적으로 드러난 결과라고 생각된다.
비대면채널의 대두, 보험플랫폼 업체의 약진 등, 설계사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판매채널의 중심은 이미 이동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최저가 경쟁’에서 설계사들의 패매는 명확한 미래다. 그 시기가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만이 존재할 것이다.
설계사들의 무기는 결국 단순 데이터가 처리하기 어려운 ‘전문성’에 있다. 소비자의 사정을 밀착해 이해하고 이를 최적으로 보장하는 다양한 상품과 특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이뤄지는 비대면 채널과의 차별성은 필수다. 설계사가 진정 보험설계사이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전문직’으로써 비대면 채널 대비 높은 비용을 요구하되 그만큼의 대가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셈이다.
때문에 판매채널의 변화의 중심인 현재는 설계사들에게 있어 생존을 위한 마지막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미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설계사들의 역량을 평가해 소비자가 ‘등급’을 메기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변하지 않는 설계사가 설 땅은 보험업계에서 조만간 한조각도 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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